출처=한국레저신문


[한국레저신문 김구식기자] 2025년 동아시아축구연맹(EAFF) E-1 챔피언십이 일본의 우승으로 막을 내렸다. 한국은 숙적 일본에 1대0으로 패하며 준우승에 머물렀고, 이번 대회는 ‘홍명보 체제’의 전술적 민낯을 고스란히 드러낸 무대가 됐다.

홈에서 우승컵을 일본에 내주며 결과를 내지 못했고, 전술과 신예 대표 선수 발굴이라는 내용면에서도 의미 있는 성과를 얻지 못했다.이런 결과보다 더 큰 문제는 경기 내용에서 나타난 전술적 정체성과 유연성 부족, 신인선수 활용의 한계, 그리고 공격 전환의 답답함이었다.

한국은 동아시안컵 3경기를 모두 변형 스리백 전술로 치렀다. K리그 울산감독 시절부터 포백 기반의 4-2-3-1전술을 고집하던 홍명보 감독은 월드컵에서는 스리백이 '플랜 A'가 될 수 있다며 전술적 변화를 시도했다.

홍 감독은 김주성(서울), 박진섭(전북), 박승욱(포항)을 스리백으로 세워 양쪽 풀백은 공격 시 상대 진영 깊숙한 지점까지 올라가 적극적으로 공격에 가담하고 수비 시 스리백과 라인을 맞춰 5명의 수비수가 상대의 볼 투입 등을 차단하는 형태였다.

1차전 중국, 2차전 홍콩 등 약팀을 상대로는 무리 없이 경기를 풀어 나갔지만 3차전 상대인 동아시아 최강 일본이 고강도 압박을 가하자 후방 빌드업부터 무너지며 전혀 힘을 쓰지 못했다.

압박에 당황한 수비진은 낮은 위치에서 공을 돌리는데 급급했고, 제대로 된 패스가 미드필더진으로 이어지지 않으며 후방 빌드업이 불가능해졌다.

결국 정교하고 세밀한 패스에 의한 빌드업이 아닌 골키퍼의 롱킥으로 공을 전방에 일단 뿌려 놓는 단순하고 확률 낮은 패턴이 이어지면서 공 소유권을 일본에 넘겨줄 수밖에 없었다.

한국은 끝내 중원 싸움에서 우위를 보이지 못했고, 홍명보 감독은 후반 초중반이 되자 오세훈(마치다), 이호재(포항)의 '트윈 타워'를 가동하고 이들의 머리를 겨냥해 크로스를 올리는 단조로운 공격 루트를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일본과의 E-1 챔피언십 최종전에 선발로 나선 남자대표팀 선수들./출처=대한축구협회


2026년 북미월드컵은 유럽과의 피지컬 차이뿐 아니라, 고온다습한 기후와 넓은 이동 거리, 강한 압박에 의한 전환 속도 등 다면적 대응이 필요하다. 그런 점에서 이번 E-1 대회에서 드러난 약점은 그 자체로 경고음이다.

현대 축구는 ‘볼 점유율’보다 ‘효율적인 역습 전환’이 승부를 가른다. 한국은 여전히 볼을 소유하는 데에만 집중하면서 결정적인 타이밍에 공간 침투가 부족하기에 스피드와 수비에서 빠른 공격전환 중심의 유연한 전술 구축이 시급하다.

한국 축구의 오래된 약점인 '수비형 미드필더의 창의성 부족'도 도마에 올랐다. 황인범-이재성 라인을 대체할 새로운 조합을 찾지 못한 것도 중원 다이내믹의 부재로 빌드업 안정성에 문제로 대두되었고, 공격 전환의 속도감이나 예측 불허의 패스를 뿌릴 자원이 부족하다. 해외파 손홍민, 황희찬, 이강인이 합류하더라도 ‘볼을 나르는 중원’이 빈다면 월드컵 무대에서 위력을 발휘하기 어렵다.

일본은 이번 대회에서 경기 중 2~3차례 전술 전환을 꾀하며 유동적으로 대응했다. 한국은 아직도 ‘플랜B’가 없다는 비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교체 타이밍, 맞춤형 포메이션 조정, 키플레이어의 위치 변화를 통한 전술적 다양성이 절실하다.

특히 북중미 대회 특성상 다양한 스타일의 팀과 조를 이룰 가능성이 높기에, 상대에 따라 유연한 전환이 가능한 전략 구축이 요구된다.

FIFA월드컵26./출처=FIFA


홍명보 감독은 선수 시절 한국 축구의 상징이었고, 2012 런던올림픽 동메달을 이끌며 지도력도 입증했다. 그러나 대표팀 감독으로서 지금은 전혀 다른 차원의 리더십과 혁신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번 동아시아 대회는 단지 '국내파 평가전'이 아닌, 한국 축구의 전술적 내실과 지도 체계가 글로벌 스탠다드에 비해 얼마나 뒤처져 있는지를 드러낸 시험대였다.

북미 월드컵까지 남은 시간은 약 1년 반. 팬들은 단지 성적이 아닌, “이길 수 있는 축구”, “변화에 유연한 팀”, “미래를 기대할 수 있는 경기력”을 원한다.

한국 축구가 또 한 번 세계 무대에서 무너지는 장면을 보고 싶지 않다면, 지금이야말로 과감한 변화와 실천이 필요하다. ‘명단’이 아니라 ‘전술’이 경기의 승패를 가르는 시대, 우리는 어디에 서 있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