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흐 연주할 때마다 삶의 의미 느껴 ... 이것은 흔치 않은 경험”

피아니스트 코롤리오프 5년 만의 내한 공연

김대현 승인 2022.09.17 21:54 의견 0
사진제공=서울시향

[한국레저신문 김대현기자] “무인도에서 단 하나의 음악만 들을 수 있다면, 코롤리오프의 바흐를 선택할 것이다. 배고픔과 목마름으로 죽어갈 때, 마지막 숨을 쉬는 순간에도 그의 음악을 듣고 싶다.” (죄르지 리게티)

현존하는 ‘바흐 스페셜리스트’ 중 가장 평온하고 명료하며 균형 잡힌 본연의 바흐를 들려준다는 평가를 받는 러시아 피아니스트 예브게니 코롤리오프(73)가 5년 만에 한국 관객을 만난다.

코롤리오프는 ‘플레인 요거트’처럼 첨가물 없이 악보 그대로의 바흐를 추구하기에 그만큼 특별하다고 평가받는다. 오죽하면 20세기 가장 영향력 있는 작곡가 중 한 명인 리게티가 마지막 순간 듣고 싶은 음악으로 코롤리오프가 연주한 바흐 ‘푸가의 기법’을 지목했을까. 15일 서면으로 만난 코롤리오프는 그의 연주 스타일처럼 어떠한 미사여구 없이 담담히 음악에 대한 열정을 펼쳤다.

그는 “바흐를 연주할 때마다 세상과 삶이 의미 있다고 느낀다”며 “이것은 흔치 않은 경험”이라고 밝혔다. 연주하면서 세계와 삶의 의미를 고찰하는 진지한 태도가 한결같이 최상의 바흐를 들려주는 그를 이끈 원동력일지 모른다.

코롤리오프가 바흐를 처음 접한 것은 7세 때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는 “바흐의 작은 전주곡 C단조는 7세의 나를 완전히 매료시킨 작품”이라고 추억했다. 그즈음 고국인 러시아 모스크바에서 캐나다 출신 명피아니스트 글렌 굴드의 바흐 연주를 듣고 바흐의 음악에 더욱 매료됐다.

그가 러시아의 전설적인 피아니스트 마리아 유디나에게 영향을 받은 사실도 유명하다. 러시아적인 바흐와 서구의 바흐 모두에 영향을 받은 셈이다. 코롤리오프는 이후 1968년, 바흐 음악 해석에 있어 권위를 자랑하는 라이프치히 바흐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코롤리오프의 바흐 연주는 극적인 면은 적지만, 그만큼 우아함과 통찰력이 부각돼 바흐 음악의 깊이를 드러낸다는 평가를 받는다. 바흐를 연주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을 질문하자 “과하면 안 된다”는 답이 돌아왔다.

코롤리오프는 “바흐의 건반 작품을 현대 피아노로 연주할 때는 아고기크(엄격한 템포나 리듬에 미묘한 변화를 줘 다양한 색채감을 나타내는 방법)를 과하게 넣지 않고, 음색을 통해 프레이징을 보다 선명하게 드러낼 수 있다”며 “특히 피아노 페달을 과하게 활용하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코롤리오프는 이번 내한 공연에 아내인 피아니스트 룹카 하지게오르지에바(74), 제자 안나 빈니츠카야(39)와 함께한다. 10대 때 만난 아내와는 1976년 ‘코롤리오프 듀오’를 결성한 뒤 반백 년 가까이 무대를 함께 다니고 있다.

독일 함부르크 음대에서 코롤리오프를 사사한 빈니츠카야는 2007년 퀸엘리자베스 콩쿠르 피아노 부문 우승자이기도 하다. 그는 아내와 제자를 ‘음악적 동지’라며 “음악성이 뛰어난 피아니스트이자 멋진 실내악 동지와 함께 훌륭한 작품을 연주하는 것은 큰 즐거움”이라고 말했다.

코롤리오프는 이번 내한 공연에서 두 가지 프로그램으로 관객을 찾는다. 오는 23일 서울 롯데콘서트홀, 24일 아트센터인천에선 바흐의 하프시코드 협주곡 다수를 들려준다. 특히 2대를 위한 하프시코드 협주곡, 3대를 위한 하프시코드 협주곡 등을 아내·제자와 함께 연주, 서울시향과 협연한다. 27일 아트센터인천에선 바흐의 작품 중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골드베르크 변주곡 전곡을 연주한다.

명성에도 불구하고 그는 클래식 스타와는 거리가 멀다.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순간보다 가족과 함께하는 삶의 행복, 연주 자체의 행복에 중심을 두기 때문일 것. “음악에 대한 끝없는 사랑이 음악을 하는 원동력이에요. 언젠가 연주 활동을 지속할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 땐 집에서라도 나를 위해 늘 연주할 겁니다.”

저작권자 ⓒ 한국레저신문,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